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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장

[쿠로스가오이] Deux hommes 10 - The Tail of Seasons

 


 

KUROO x SUGAWARA x OIKAWA x SUGAWARA x KUROO

 


 

 


 그렇게 눈이 내리고, 얼마 뒤의 일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스가와라."
 "네."


 눈은 내렸지만 그 후로 날씨는 조금 더 포근해진 터라, 모처럼의 주말에 얇은 니트 차림으로 집을 나선 스가와라가 서점에 미리 들렸다. 고전 코너에서 책을 고르는 중에 익숙한 옆모습이다 싶어서 돌아보았더니, 다름 아닌 우시지마였고.

 어색한 기류 속에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둘은 다시금 자신들의 책을 찾기 위해 열중했다. 저 사람도 이런 책을 읽는구나. 하고 스가와라는 내심 오만한 생각을 했다.

 겨울 공기를 타고 떠다니는 이런저런 소문 들중에 하나가 바로 우시지마에 관한 것이었다. 1월이 되면 동경대 센터시험을 치룰거라는 둥, 게이오 의대에 이미 합격을 했다는 둥 하는 소문이, 그런 소문만이 무성했다.


 "파우스트 찾으시는 건가요?"


 그럼 지금 들고 있는 거 말고, 이쪽 번역이 좀 더 잘 나왔어요. 문체도 군더더기 없고. 스가와라의 가벼운 참견에 우시지마가 눈을 맞춰 왔다. 아니 맞추어 왔다기보다는 어딘가 그저 내려다보는 기분이. 그의 눈이 그러다가 다시금 스가와라가 지목한 서적으로 향했다.

 그들이 서 있는 고전 코너에는 어딘가 눈 온 뒤 이리저리 밟혀진 카펫의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알 수 없었다. 사실 밝혀진 것은 어디에도 없었다.


 "이 근처로는 조금 더 조용하고,"
 "네?"
 "어수선하지 않은 사람은 없나?"


 나를 보고서 오이카와 주제를 꺼내지 않을 만한 그런 사람 말이야. 스가와라. 나는 요즘 그런 사람을 찾고 있거든.

 그러고 보니 그새 안색이 조금 피곤하게 변한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서 없던 감정에 동요가 생기는 것은 아니더라도. 스가와라는 그런 우시지마가 조금은 안쓰럽다고 생각했다.

 그런 사람은 모르겠지만. 파우스트를 읽기에 나쁘지 않은 장소를 한 군데 알고 있어요. 라면서 스가와라의 입술이 작게 소리를 냈다. 그래 봤자 그런 두 사람이 먼 길을 돌아 도착한 곳이, 겨우 열린 문을 비집고 들어오게 된 스가와라의 부실이었대도 말이다.

 스가와라는 부실로 들어서자마자 실내온도를 높였다. 실내엔 한적한 공기가 맴돌았다. 이제 곧 있으면 동계방학도 시작이 될 테고, 그 사이로는 부실을 찾는 사람이 드물 것이다. 오이카와부터도 벌써 발길을 끊은 지가 오래이고. 그러다 보니까,

 그러다 보니까 우시지마 씩이나 끌고 들어오게 된 것인지. 스가와라는 사실 그런 제 행동의 저의를 알 수가 없었다.


 "예전부터 궁금했었는데. 물어봐도 되나요?"


 그러자 어디 소파 위에서 죽은 듯이 누워 있던 우시지마가 가만히 스가와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에 스가와라는 목울대 즈음에 걸려 있던 침을 조금 삼켜냈다.

 왜 오이카와가 우시지마 씨를 유독 꺼리는 지에 대해서요. 그게 좀 궁금했었거든요. 내내.

 그 뒤로 무겁게 터진 우시지마의 헛웃음이 낮게 깔렸고 스가와라는 모처럼 그의 입술을 주의 깊게 살폈다. 대체 저 입에서는 무슨 대답이 나올까, 하여.


 "오이카와의 감정이란 게. 얇은 종잇장처럼 너무 뻔하고 유치하거든."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뭐라도 있을 것 같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이 말라선. 계속 무얼 하려고 해도, 애초에 다져진 게 없어."


 그래서 오이카와는 나를 싫어해. 평범한 사람을. 부러워했으니까.

 어떤 보이지 않는 지점에서의 요지를 짚는 느낌으로 대답을 하는 것만 같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괜한 걸 물었나 싶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시지마가 제 질문을 피하려 한 것 같은 기분은 들지 않고. 그저 제가 아직 이해할 길이 멀었다고 생각하는 수밖에.

 여태까지의 반찬은 대체 어디에 버렸던 건지. 입도 안 댔겠지. 오이카와라면 그걸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테니까. 가여운 오이카와. 언제쯤 정신을 차리려나. 라는 등의 말은 물론 내뱉지 않았지만. 우시지마는 그런 생각들을 속으로 삼키며 다시금 천장으로 눈을 돌렸다.

 부실은 영 낯설지 못했다. 그래. 익숙했다.

 이곳에서 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 저기 앉아 있는 스가와라는 상상이나 해봤을까, 기억을 곱씹으며. 아마 그런 기억의 단편에도 맛이 있다면 그때의 그것은 재의 맛이 날 것이다.

 그랬다.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후편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