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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장

[쿠로스가오이] deux hommes 6

 

 

KUROO x SUGAWARA x OIKAWA

 

 

 "테츠로, 이건 어때?"
 "예쁘네. 그거로 해."
 "아니면 이 목걸이로 할까? 근데 다이아는 너무 과하지? 진주 정도가 괜찮으려나?"
 "글쎄. 너 좋은 거로 사."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너한테 잘 보이고 싶은 거니까.

 쿠로오가 붉어지는 여자의 볼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래. 누구를 닮았다고 했었는데 누구였더라, 아이돌 중에 이름이 뭐였지.

 번화가 중심지에 있는 악세사리샵은 잔잔한 음악이 함께였다. 쿠로오에겐 더할 나위 없이 지루한 분위기를 전해줄 뿐이었지만 상대방은 어쩌면 그와는 정반대의 감정을 느끼게끔 하는 역할을 해주는 듯했다. 기분 좋은 설렘, 아니면 긴장감 같은 것들.

 아. 지겹네.

 쿠로오는 내심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경직되어있던 입꼬리를 한껏 볼까지 끌어올려 세심한 남자친구가 된 마냥 웃음을 지었다. 차라리 귀찮은 편이라도 사토미를 더 만날 걸 그랬나. 연애 초의 이런 상황극도 이젠 슬슬 질려가는 참이었다.


 "내일은 저녁이나 같이 먹을까?"


 점원이 쿠로오 신용카드의 마그네틱을 긁자, 여자는 한층 더 밝은 얼굴을 했다. 영수증은 필요 없어요. 그리고 뒤이은 쿠로오의 말에 여자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저녁은 핑계지만. 쿠로오가 여자의 목선 아래로 유려히 흘러내리는 은빛 목걸이를 느릿하게 눈으로 훑다간 다시 시선을 올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내리까는 눈꺼풀 아래로 작은 그늘이 생겼다.

 침대에서 우는 표정이 궁금해지는 얼굴이네.

 자기만 들릴 정도로 작게 코웃음을 친 쿠로오가 얕게 떨려오는 여자의 어깨를 조금 세게 쥐어 잡았다.


 "쿠로오……."


 분위기에 약한 존재. 그런 존재들은 유난히도 다루기가 쉬웠다. 필요한 건 적당한 조명과 드문 인적, 그리고 주인공의 외모 정도려나.

 노을이 지는 호수 앞을 유유히 거닐던 쿠로오가 가만히 고개를 숙여 여자에게 입을 맞춰왔다. 두어 번 그녀의 아랫입술을 느릿하게 감쳐 물다간 이내 여자의 귓바퀴를 어루만지며 가운데를 갈라 혀를 집어넣었다.

 으응. 입속으로 축축하게 스며드는 여자의 애닳은 소리를 삼킨 쿠로오가 큰 손으로 그녀의 뒷 목을 한 번에 감쌌다. 그와 동시에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좀 더 깊숙하게 입을 맞췄다.

 그런 뒤엔 다른 한 손을 들어 꼭 주먹을 쥐고 있던 여자의 손가락 사이로 쳇바퀴가 맞물리듯 제 것을 밀어 넣어 단단히 깍지를 꼈다. 습관적으로 핸드크림을 바르던 여자의 손은 생각보다 감촉이 좋아서 애먼 것을 쥐여주게 하고 싶어질 정도였다.

 사실 그녀에겐 딱 그 정도의 평이 적당했다.


 "……어때?"
 "좋은데,"
 "살짝 비뚤어졌나?"
 "응."
 "아……."


 엉망으로 말려 올라간 체육복 바지 아래로 훤히 보이는 하얀 살결이 유난히 눈에 밟혔다. 끙끙대며 포스터를 거는 뒷모습을 구경하는 게 나름 싫지 않을 것 같아서 따라나섰던 건데 예상외로 매끈한 다리라인에 오이카와는 그쪽으로 좀 더 신경이 갔다.

 아까부터 도와주겠다고 했던 걸 무심하게 거절했던 것도 저쪽이고, 그 때문에 식은땀을 흘리는 것도 저쪽이겠지만 역시 도움이 필요하려나.


 "여기가 조금,"
 "……."
 "이제 됐어 코우시?"
 "응?……어."


 뒤꿈치를 바짝 들고 있었던 탓에 제 바로 뒤에 붙어오는 오이카와 쪽으로 완전히 기댄 자세가 돼버린 스가와라가 당황한 얼굴을 하곤 귀 끝을 조금 붉혔다. 덕분에 게시판에 붙은 포스터가 예쁜 평형을 이루긴 했지만.

 부실로 향하는 중에도 잠시 동안 손등 위로 닿았던 오이카와의 체온이 홧홧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 어쩐지 이상한 기분이 된 스가와라가 괜히 딴생각을 해보려 노력했다.

 바야흐로 10월 축제의 시작이었다.


 "쿠로오는 집에서 쉬겠대."
 "그래."
 "너는…어디 안 가?"
 "어디라도 갔으면 하는 말투네."
 "그런 게 아니라,"


 넌 딱히 축제 같은 데 관심 없는 스타일 같아 보였거든.

 물론 지금도 그래 보이고 말이야. 스가와라가 뒤이은 말은 다시 되 삼키며 탁자 넘어 소파에 앉아 있는 오이카와를 바라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따라붙은 오이카와의 눈빛이 묘하게 변했다. 대체 저런 눈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걸까. 막연한 상상을 해보려던 스가와라가 저 혼자 고개를 저으며 다시 읽고 있던 책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건 그렇고. 아까 붙인 포스터는 뭐야?"
 "아. 그거 연극부. 내일 공연이잖아."
 "내가 맹인이냐고 물은 게 아니라,"
 "어?"
 "왜 코우시 네가 그걸 붙이게 된 건데?"


 오이카와의 물음에 스가와라가 책을 아래로 향하게 덮으며 조금 생각하는 체를 했다.


 "도서부 행사는 오전 중에 모두 끝났고."
 "그런데?"
 "그러다 연극부 친구가 도와달라고 해서 도와줬을 뿐이야."
 "그러니까 네 말은,"


 학생회장이 갑자기 연극부 임원이 되었다는 거야?

 윽. 오이카와가 정곡을 찔렀다. 그 일격에 따로 말을 덧붙이지 못하고 입만 뻐끔거리는 스가와라의 모습에 오이카와가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이전에 총무회에 대한 얘기를 나누었을 때 오이카와는 그를 쓰레기라고 표현했었으니까. 스가와라도 한편으론 오이카와가 회장에 대해 안 좋은 인식을 하고 있으리라고는 대충 예상하고 있었다. 어차피 쿠로오야 평소에 별 생각 없이 사는 것 같았지만, 그와 달리 오이카와같은 성격이라면 괜히 그런 말을 한 건 아닌 듯하고.

 아, 회장? 오이카와의 친척이야. 어머니 쪽이었던가. 확실히 성이 달랐으니까.

 지난주, 하릴없이 쿠로오와 단둘이 남겨진 부실에서 어질러진 탁자 위를 치우다가 넌지시 물은 질문에 간결한 대답이 돌아왔다.

 친척이라고 했다.


 "아까 얘기하는 거 들었어."
 "아……. 그랬구나."
 "뭐야 그건?"
 "어떤 거?"


 왜 숨기는 건데. 회장이 부탁했던 걸 말이야.

 전에도 느꼈지만, 학생회장은 동물로 비유하자면 무소 같은 느낌이었다. 거의 190cm에 육박하는 키에 운동선수처럼 덩치도 있는 편이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위압감이 드는 외모라고 해야 하나.

 게다가 그가 하는 말 한마디, 한 마디 모두 무게가 실려서 만일 가벼운 농담을 친대도 전혀 그를 눈치채지 못할 정도였다. 일단 농담이란 걸 모르는 사람 같아 보였지만.

 뭐 그래 봤자 도서부 관련한 일정이 모두 끝나고 비품실로 가던 중에 학교 복도에서 마주쳤을 뿐이었다. 때마침 연극부는 모두 바빴고, 스가와라는 한가했으니까. 그러므로 부탁했던 것이고 스가와라는 그를 거절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해야 되나.


 "네가 우시지마씨와 조금 달갑지 않은 관계인 것 같아서."


 어떨 때 어떤 사람에게 있어 불편한 존재는, 그의 이름을 꺼내는 것조차 불쾌할 수도 있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해왔다.

 하지만 제 말에 점차 표정이 굳어가는 오이카와를 보니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았지만.


 "어째서 코우시가 나와 우시지마와의 관계를 신경 쓰고 있는 건데?"
 "글쎄……."


 부러 제 사촌에 대해 제 3자의 시선으로 말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하지만 오이카와는 아주 자연스럽게 제 친척인 우시지마에 관해 타자화를 했고, 그에 더해 이전에 들었던 쿠로오의 답변은 둘 사이가 예사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예측하는 데 일조했다.

 하지만 이러한 내용을 차곡차곡 정리하여 입 밖으로 내뱉기에 스가와라는 너무 귀찮았던 이유로 그저, 글쎄 라며 말을 얼버무릴 뿐이었다.

 오이카와는 그를 관망하며 흐음하고 작게 콧소리를 냈다. 제 대화 상대의 행동이 눈에 거슬린다는 의미에서였다.


 "테츠로가 또 쓸데없는 말을 한 거지?"
 "……."
 "뭐야. 맞나보네."
 "아, 아냐."
 "이걸 믿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해, 말아야 해?"


 쩔쩔매며 발을 불안스레 구르는 스가와라의 행동을 보며 오이카와는 얕은 눈웃음을 지었다.

 쓸데없이 솔직하기는.

 귀찮은 것은 귀찮은 것을 불러일으킨다. 마치 아주 자연스러운 연쇄작용이라도 되는 것처럼. 어느 날 아침 발이 불편한 구두를 신으면 어딘가에 걸려 넘어지곤 말듯이, 스가와라는 오이카와에게 있어 우시지마라는 귀찮은 존재를 다시금 제 일상으로 끌어들이려 하고 있었다.

 

 

 

 

후편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