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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Q!!/장

[쿠로스가오이] deux hommes 7


KUROO x SUGAWARA x OIKAWA

 


 

 

 "오이카와."
 "아……. 안녕. 웬일이야?"
 "아침 인사보단 네 옷부터 입는 게 우선일 것 같은데."
 "응. 참견 마."


 아침 운동으로 조깅이라도 했던 모양인지, 오이카와 집 현관문 사이에 걸쳐서 있는 우시지마에게서 옅은 풀냄새 같은 것이 비릿하게 풍겨왔다. 특유의 검은 머리가 새벽부터 내린 이슬비에 조금 물기를 머금은 채, 우시지마는 꽤 아무렇지 않은 듯한 태도를 하고 오이카와의 거실로 들어섰다.

 아마도 그가 그를 찾아온 목적이었을 락앤락은 반찬거리가 이것저것 담겨있었겠지만, 어디 냉장고 귀퉁이에 그대로 처박혀 자리매김할 뿐이었다. 이러나 저러나 우시지마는 어느새인가 입고 있던 트랙 재킷까지 어딘가에 내팽개쳐놓고 소파에 앉아, 멀거니 허공만 응시하는 중이었다.


 "반찬만 갖다 주고 오란 소리는 안 하셨니?"
 "……."
 "저기,"
 "그렇게 말 안 해도 시간 되면 갈 거니까."


 보채지 말지.

 오이카와가 욕실 선반에서 꺼내온 샤워가운을 느릿하게 몸 위로 둘러 입으며 그렇게 비꼬아 묻자, 우시지마가 곧장 되받아쳐 말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여전히 그의 시선은 제 맞은편의 아무것도 없는 벽을 향한 채였다.

 진짜. 별. 역시나 예상 가능한 대답에 유쾌하지 않은 웃음을 지은 오이카와가 다시 입고 있던 샤워가운을 벗으며 제 침실방문을 열어젖혔다.


 "난 이제 다시 잠들 테니까, 내 주말을 망치고 싶은 생각이라면 지금 일러둬."
 "대체 왜 그렇게 비뚤어진 거지."
 "고맙다."
 "좀 더 상대방 처지를 생각한 뒤 말하지그래."
 "그런 말 너한테 들으니까 진짜 어이없는 거 알지?"


 아침부터 재수가 없으려니까. 그 한 마디만큼은 도저히 싸울 기운이 없었으므로 목구멍안에 다시 삼켜낸 오이카와가 마지막으로 중지 손가락을 우시지마 쪽으로 반듯하게 세워 보여준 뒤에서야 침실로 들어섰다.

 덕분에, 뭐 같아진 주말의 시작이었다.


 "친구는 안 만나?"
 "응."
 "애인은?"
 "없어."
 "그니까, 대개는 있잖아?"
 "……떠들 시간 있으면 저 위에 책이나 좀 꺼내줄래?"


 이럴 줄 알았으면 오늘 같은 날에는 가만히 집에서 티비나 돌려보는 거였는데. 스가와라가 그런 생각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모처럼 맑아 보인 탓에 바깥이나 돌아다녀 볼까 했던 것이 착오였다. 물론 날씨는 좋았으나 오래간만에 들린 서점에서 쿠로오같은 사람을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고, 고작 자신 때문에 쿠로오가 옆에 있던 여자친구를 집으로 돌려보낼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그런 서운한 표정은 하지 마. 그렇다고 내 가슴이 찢어지진 않거든.

 쿠로오는 어쩐지 우울한 표정을 하는 여자에게 저런 말을 잘도 했다. 그것도 꽤 다정한 말투로, 마치 투정부리는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예쁘던데."
 "소개해줄까?"
 "……사양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네 여자친구가 하고 있던 목걸이가 예쁘단 소리였어."
 "아 목걸이. 너도 사줄까?"
 "……."


 말을 말아야지, 말을. 스가와라가 지금 상황에 떠오르는 적절한 여러 가지 비속어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내며 얼른 카운터 앞으로 가서 섰다.

 옆에서 방해해준 덕에 고른 책은 겨우 두 권. 게다가 그중 한 권은 아예 생각지도 못한 대중문학이었다. 애초에 어떤 책을 사야겠다, 하고 서점에 들른 것은 아니었지만 대중문학이라니. 별로 관심도 없었던 분야였는데 말이지. 스가와라는 어쩐지 조금 망설이는 태도로 지갑을 꺼내 들었다.


 "책이라면 학교 도서실에도 많잖아."
 "그래 봤자 그건 남의 책이니까. 가끔은 이렇게 사서 읽는 게 기분전환도 되고."
 "한 번 읽으면 끝인 걸 왜 사는 건데?"
 "……쿠로오. 너 한 번이라도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 있어?"


 첨가된 경멸의 뉘앙스에 스가와라는 제가 말하고도 놀란 반면에, 쿠로오는 딱히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태도로 어깨를 조금 으쓱거릴 뿐이었다.


 "너 어디 가서 인문독서부라는 얘기 하지 마라."
 "날씨 좋은데 어디 산책이라도 할래?"
 "……."


 쿠로오의 말에 자신이 딱히 긍정하는 태도를 보였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는데, 정신 차려보니 스가와라는 어느새 쿠로오 옆으로 나란히 서선 길을 걷는 중이었다. 그래, 어쩌면 나도 오늘만큼은 이런 기분을 내도 괜찮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몰라.

 그렇게 스가와라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체념하기로 하고 발밑의 보도블록 모양을 따라 느릿하게 걸음을 옮겼다.


 "……."
 "처음 타본다고 했잖아."
 "두 명이요."


 두 명분의 액수를 찍은 스가와라가 은연중에 교통카드에 남아있을 잔액 따위를 떠올렸다. 충전한 게 꽤 오래전인데, 아직은 쓸만하려나. 그런 생각을 하며 앉을 자리를 찾는데, 어느새 뒤쪽으로 자리를 맡은 쿠로오가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팡팡 두드렸다.


 "재밌네."
 "어떤 게?"
 "덜컹덜컹하는 거."
 "그래."


 참 재밌기도 하겠다. 쿠로오는 버스가 처음이라고 했다. 하긴 평소에도 기사가 운전하는 세단 같은 걸 타고 등교하는 것 같았으니까. 생각해보면 그렇게 이상한 일도 아니지. 스가와라가 옆 대로로 빠르게 지나가는 자동차 같은 것을 바라보며 눈을 느릿하게 몇 번 깜박거렸다. 그런 그의 무릎 위엔 조금 전에 구매한 책이 든 종이봉투가 다소곳이 놓여있는 참이었다.


 "내가 들까."
 "그래."
 "웬일이야."
 "뭐가?"
 "보통 같으면 '됐어 이리 줘'하고 거절하잖아, 스가 너 말이야."
 "그랬나."


 쿠로오의 말에 별 감흥 없는 눈초리로 봉투 손잡이가 빠져나간 제 손을 응시하던 스가와라가 그렇게 대꾸했다. 그에 쿠로오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지만 스가와라는 도저히 그의 웃음 포인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버스에서 내려 정처 없이 주변 공원을 걷기도 한참. 스가와라의 지친 기색을 눈치챈 쿠로오가 근처를 탐색하는 듯싶더니, 벤치 하나를 발견하곤 스가와라를 그쪽으로 이끌었다. 스가와라와 쿠로오는 둘 사이에 두 뼘 정도의 간격을 두며 자리에 앉았다.

 그들의 맞은편 하늘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예쁘다."
 "다음에 또 와,"
 "응?"
 "여자친구랑."
 "스가."
 "응."
 "너보고 말한 거야."
 "……."
 "예쁘다고."


 쿠로오. 그런 말은 네 여자친구를 위해 좀 아껴두지 그랬어. 그녀에겐 너의 말이 칭찬이 될 테니까 말이야.

 말 뒤로 스가와라와 쿠로오의 시선이 조금 얽혔다가 흩어졌다. 스가와라가 그런 시선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린 까닭이었다.


 "별로. 그런 생각해본 적 없어."
 "스가, 우리 관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글쎄."
 "생각해봐."
 "친구…겠지."


 거짓말이었다. 오이카와와 쿠로오, 그리고 자신의 관계는 친구라고 단정 짓기엔 복잡미묘한 것이란 것을 스가와라 본인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러한 사이를 지칭하기에 확실히 들어맞는 단어도 없고, 아마 그런 것쯤은 질문을 던진 쿠로오도 알고 있을 터였다.

 이러한 화자의 의도를 파악하시오.

 스가와라는 가만히 저를 내려다보는 쿠로오의 표정을 읽으려 그 얼굴을 찬찬히 감상해나갔다. 그러고 보니 쿠로오의 첫인상은 어땠더라. 적어도 지금 같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친구, 라."
 "쿠로오."
 "응."
 "왜 그런 표정을 해?"
 "내 표정이 어떤데?"
 "꼭……."


 흥미로운 먹잇감을 발견하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잖아. 스가와라는 그 말을 내뱉는 대신 없었던 것처럼 다시 목구멍으로 삼키는 걸 택했다. 어찌 됐든 말의 파장이란 건 무서운 힘을 갖고 있으니까.


 "왜 말을 하다 말아."
 "됐어. 이제 가자."
 "코우시."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스가와라의 허벅지를 한 손으로 눌러 앉힌 쿠로오가 뒤이어 한쪽 어깨를 붙들었다. 그러자 어느새 들어갈 틈 없이 붙어 앉는 모양이 된 두 사람의 눈빛이 서로에게 날카로이 집중됐다.

 이름, 불렀어. 쿠로오가. 스가와라는 쿠로오의 입에서 나온 저의 이름에 자기도 모르게 무릎 위로 주먹을 작게 쥐었다.


 "왜,"
 "좀 놓지그래."
 "꼭 너를 잡아먹을 것 같기라도 했어?"
 "……."
 "내 얼굴이 말이야."
 "…쿠로오."


 이번에는 쿠로오의 표정이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묘하게 변했다. 아니면 위로 지는 노을 때문이려나.

 서점에서 마주쳐 이런 알 수 없는 대화를 나누는 여태까지. 스가와라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쿠로오에 대해 이해한 적이 없었다. 단순해 보이지만 무엇보다 복잡하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저 종잡을 수 없다고 말해야 될지.


 "쿠로오 네가 하는 말은 듣기엔 쉬운데,"


 뜻이 너무 어려워.

 제 어깨 위에 올려진 쿠로오의 손에 제 손을 슬며시 겹쳐낸 스가와라가 천천히 그를 밑으로 끌어내리며 그렇게 말했다.

 말의 파장. 그에 쿠로오가 조금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이내 그를 걷어내곤 작게 실소를 터뜨렸다. 그러자 고조되던 분위기가 삽시간에 잠잠해지며 그들의 주변으로 자연스레 스며들어 갔다.


 "가자. 택시 태워 보내줄게."
 "그래."


 쿠로오가 먼저 일어나 제 쪽으로 손을 내밀자, 스가와라는 약간 망설이는 듯한 낌새를 보였지만 이내 그 손을 꽉 맞잡은 뒤 벤치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털었다.


 "손잡을래?"
 "뭐?"
 "친구라며. 이 정도는 할 수 있잖아?"
 "웃기라고 하는 소리지?"
 "아니."
 "야,"
 "손이 차갑네 스가."


 걸을 때마다 언뜻언뜻 스치는 손등의 감각이 물러질 때쯤, 쿠로오가 그런 말을 하며 스가의 손을 잡아챘다. 공원에서 택시가 다니는 대로변까지는 사실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거리였지만, 스가와라는 뜨끈한 쿠로오의 체온을 느끼며 상대성이론에 대해 생각했다.

 이참에 조깅이라도 해볼까. 쿠로오의 악력이 어찌나 센지 아무리 손을 빼보려고 해도 힘만 빠질 뿐이었다. 그래도 같은 남잔데, 이렇게까지 다를 수 있나 싶어 허탈했지만 스가와라는 이내 그런 마음마저 체념하곤 당장부터 체력을 길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후편으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백조택이니까 bgm도 생상스 백조ㅎㅎ...